약력
1478년 2월 6일 영국 런던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앤서니학교에서 수학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해 그리스어와 라틴어, 신학을 공부하다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퇴한 후 링컨법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501년 정식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법률가이자 행정가로 충실히 일하면서도 신학, 철학, 예술,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당대의 인문주의자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1515년 5월 영국 사신단의 일원으로 브루게를 방문했고, 협상 기간 중 여가를 이용해 《유토피아》를 저술했으며 런던으로 돌아와 1516년 출판했다. 한때 성소(聖召)를 느끼고 이에 응답하고자 4년 동안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의 영성 수련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결국 평신도의 길을 선택했고 일생 동안 기도와 단식을 수행하며 성실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결혼이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을 천명했다가 1534년 4월 런던탑에 수감되었다. 이어 헨리 8세가 영국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에 반대해 반역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1535년 7월 참수형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사후 1935년 5월 20일 교황 비오 11세의 추대로 시성되었다. 저서로 《피코 델라 미란돌라 전기》와 미완으로 남았지만 사후 출간되어 후대 역사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리처드 3세 전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