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1712년 제네바에서 시계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9일 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친척들과 목사에게 맡겨져 돌봄을 받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독서에 탐닉했다. 열네 살 때 아버지가 재혼하자, 정신적 충격을 받고 방황했다. 1728년부터 방랑 생활을 시작해 조수, 비서, 가정교사 등으로 일하며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프랑스의 드 바랑 남작 부인을 만난 10년간 깊은 관계를 맺었다. 파리에 정착해 디드로, 달랑베르, 콩디야크 등 당대 계몽주의자들과 교류했고, 1750년 《과학과 예술론》을 출판해 사상가로 인정받았다.
1755년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출간하고, 〈정치경제론〉을 《백과전서》에 수록하는 등 활발히 집필 활동을 하면서 디드로, 볼테르 등과 분명한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이후 서간체 연애 소설 《신(新) 엘로이즈》를 파리와 런던에서 출판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소설 형식의 교육론 《에밀》, 이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제안한 《사회계약론》 등의 대작을 차례로 출간했다. 한편 파리에서 테레즈 르바쇠르와 낳은 다섯 아이를 모두 보육원에 맡겨버린 일로 평생 죄책감을 느꼈다. 1762년 신앙 문제로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여러 곳으로 쫓겨 다녔으며,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1768년 테레즈와 결혼했다. 말년에는 《고백록》, 《대화: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를 집필했고, 1776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집필을 시작했으나 미완으로 남았다. 1778년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1794년 유해가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