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1892년 3월 1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얼마 뒤 어머니의 광증이 발병해 어머니의 친정인 아쿠타가와 가문에서 양자로 자랐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문과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고, 구메 마사오, 기쿠치 간 등과 교우하며 제3차 《신사조》에 참여해 첫 소설 〈노년〉을 발표했다. 1915년 《제국문학》에 〈라쇼몽〉을 발표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가 되어 ‘목요회’에 참석했다. 이듬해 제4차 《신사조》에 〈코〉를 발표해 소세키에게 호평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해 도쿄제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기관학교에서 영어 교관으로 재직했다. 1917년 첫 번째 창작집 《라쇼몽》을 출간하고 이듬해 쓰카모토 후미와 결혼했다. 1919년 해군기관학교를 사직하고 〈오사카 매일신문〉 소속으로 작품을 기고했다. 이듬해 〈묘한 이야기〉, 〈버려진 아이〉, 〈남경의 그리스도〉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21년 〈오사카 매일신문〉 특파원으로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 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1927년 4월 부인의 동창생과 호텔에서 동반 자살을 약속했으나 여자의 변심으로 실패했다. 7월 24일 새벽, 자택에서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에는 자살의 이유로 “그저 막연한 불안”이라 썼다. 1935년 친우 기쿠치 간이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