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154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멀지 않은 대학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외과의사인 아버지의 빚 때문에 가족은 재산을 압류당한 후 여러 지역을 전전했고, 세르반테스는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정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당대의 유명한 문법 교수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의 지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68년 오요스의 문집 《역사와 관계》에 세르반테스의 시가 실렸는데 이때부터 그의 창작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69년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 추기경의 시종으로 일하다, 이듬해 나폴리에서 스페인 보병대에 입대했다.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세르반테스의 표현을 빌리면 “오른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왼손을 잃게” 되었는데, 그때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다 1575년 나폴리에서 귀국하던 중 터키 해적들에게 붙잡혀 알제리에서 5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1580년 삼위일체수도회의 한 수사가 몸값을 내주어 석방되었다. 고향 마드리드로 귀국 후 살길이 막막해지자 문필가의 길로 들어섰다. 1585년 첫 작품인 목가소설 《라 갈라테아》를 발표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1587년 세비야로 이주해 무적함대를 위해 밀과 올리브유를 거두어들이는 식량 징발 참모로 일하다가 직권 남용 혐의로 투옥되었다. 1597년에는 그라나다에서 국가 공금을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공금을 맡긴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두 번째로 투옥되었다. 이 시기에 감옥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돈키호테》를 구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58세 때인 1605년, 《재치 넘치는 시골 양반 라만차의 돈키호테》(《돈키호테 1》)를 출판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다. 그 후 중단편 소설을 모은 《모범 소설집》(1613), 장편 시집 《파르나소에의 여행》(1614), 《새로운 여덟 편의 희극과 여덟 편의 단막극》(1615)을 출간했으며, 《돈키호테 1》이 출간된 지 10년 만인 1615년 《재치 넘치는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돈키호테 2》)를 출간했다. 1616년 4월 22일 수종으로 69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마드리드의 트리니타리아스 이 데스칼사스 수도원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지나 무덤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