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 문예세계문학선 126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지음,  송영택 옮김
장르 외국문학
ISBN 9788931010848 03850
발행일 2018-03-30 (초판)
제본 형태 / 판형 소프트 커버 / 규격외
페이지수 176
정가 9,000원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 릴케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려낸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하느님 이야기


섬세한 심리 묘사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답고 언어로 풀어낸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선 126번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은 릴케가 러시아 여행에서 얻은 수확이다. 그 영향으로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체험의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각각의 단편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동화 형식을 취하고 있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선입견 없이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바라고 있다.

릴케가 이 단편집에 실은 열세 편의 단편들은 그 하나하나가 하느님이라는 하나의 실로 연결되어 있으며, 작품 곳곳에 하느님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야기되는 ‘신’에 대한 이해를 벗어난다. 릴케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 신에 의해 규정되었다기보다,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모습이 언제나 변화하고 새롭게 생성된다고 바라보고 있으며,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참모습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릴케의 생각은 하느님은 어디까지나 이 지상의 사물들에 내재하므로 이윽고 그 사물들 속에서 날이 새듯이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범신론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고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릴케는 가난한 삶을 단순히 물질적인 궁핍으로 묘사하지 않고, 거짓과 욕심을 벗어나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삶의 참다운 모습으로 바라본다. 삶을 바라보는 릴케의 예술가적 시선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언제나 내적 성숙을 위해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느님의 손에 대한 이야기
미지의 사람
하느님은 왜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가
러시아에 어떻게 배신이 찾아왔는가
티모페이 노인은 어떻게 하여 노래하며 세상을 떠났나
정의의 노래
베네치아의 유대인 거리에 있었던 정경(情景)
돌에 귀 기울이는 사람
골무가 하느님이 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필자 불명의 추기(追記)
절실한 필요에서 생긴 협회
거지와 자존심이 센 소녀
어둠에게 들려준 이야기
작품 해설 -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
R. M. 릴케 연보
 
 
■ 하느님은 완전히 숙달된 두 손에게 나머지 작업을 맡겼습니다. 인간이 과연 어떤 솜씨로 만들어졌는지 내심으로 몹시 알고 싶었으나,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먼 지상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제는 지상에서 작은 잎사귀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으로서는 이렇게 잇달아 불행이 계속된 후라서, 하다못해 사소한 기쁨이라도 맛보고 싶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두 손을 향해,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기 전에 먼저 자기에게 그 만듦새를 보여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몇 번이나,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다 됐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답은 없고, 대답 대신 손이 무언가 빚는 소리만 들릴 뿐이어서 하느님은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거무스레한 이상한 것이 공중을 누비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방향으로 보아 가까이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하느님은 손을 불렀습니다. 손은 둘 다 흙투성이가 되어, 화끈 달아오른 채 부들부들 떨며 나타났습니다. (15쪽)

■ 포르타 로마나라는 성문 앞에서 미켈란젤로는 문득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양쪽에 즐비한 집들이 마치 양팔처럼 그에게로 뻗어 오더니 순식간에 그를 붙잡아서 거리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나아감에 따라 길은 점점 좁아지고 차츰 어두워졌습니다. 간신히 집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가 되어서야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수수께끼의 손에 붙잡혀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큰 방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서 그가 언제나 글을 쓰는 방으로 달아났습니다. 그곳은 길이가 두 발짝 정도밖에 되지 않고 천장이 낮은 작은 방입니다. 주위의 벽이 그에게로 덮쳐들었습니다. 그의 거구와 싸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가만히 그것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몸을 움츠려서 주위의 벽이 하는 대로 내맡겼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겸허한 마음이 솟아나고, 어떻게 하든 작아지고 싶다는 욕망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미켈란젤로, 네 속에 있는 것은 누구인가?’ 비좁은 방에 웅크리고 있던 사나이는 이마를 무겁게 두 손 안에 묻으며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다름 아닌 당신입니다.’ (94~95쪽)

■ 나는 외투를 입고 친구 에발트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책을, 물론 헌책이었지만, 읽느라고 늦어져서 그만 날이 저물고 말았다. 마치 러시아에 봄이 찾아드는 것처럼 순식간의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방 구석구석까지도 환하게 보였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저녁 어스름밖에 보이지 않는 척하고 있다. 그곳에 커다란 검은 꽃이 피어나고, 그 비로드 같은 꽃받침 둘레가 잠자리 날개처럼 반짝거렸다. (142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본명은 르네 마리아 릴케였으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라이너로 고쳐 부름)는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육군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시를 쓰기 시작해 열아홉 살에 첫 시집을 출판했다.
뮌헨대학을 졸업할 무렵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데 참다운 안내자 역할을 해준 정신적 후원자였다. 이후 조각가 로댕의 문하생인 베스토프와 결혼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로댕론》을 집필하려고 부부가 번갈아가며 파리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르네상스 회화에 눈을 뜨며 루 살로메에게 보내려고 쓴 《피렌체 일기》, 체코 민족 독립운동에 공감을 표한 단편집 《프라하의 두 이야기》, 루 살로메와 동행한 두 차례의 러시아 여행을 토대로 쓴 《시도서》, 로댕의 영향으로 강한 조형성이 드러난 《새 시집》, 하이데거 등이 자주 철학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은 《오르페우스에게 보내는 소네트》를 비롯해 《형상 시집》, 《두이노의 비가》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말년에 병고에 시달렸으나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등 많은 프랑스 문인과의 교류는 끊이지 않았다. 1926년 스위스 발몽 요양소에서 백혈병으로 죽었으며, 나흘 후 소망하던 대로 발리스 벌판이 훤히 보이는 라로뉴의 교회 묘지에 묻혔다.
 
 
송영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시인으로 등단해 활동하고, 문인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지은 작품으로는 시집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가 있고, 옮긴 작품으로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릴케 《말테의 수기》, 《어느 시인의 고백》, 《릴케 시집》, 헤세 《데미안》, 《게르트루트》,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시집》,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쇼펜하우어 《삶과 죽음의 번뇌》, 레마르크 《개선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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