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들의 시간
저자 우경미 지음
장르 한국문학
ISBN 9788931007121 03810
발행일 2012-03-15 (초판)
제본 형태 / 판형 소프트 커버 / 규격외
페이지수 268
정가 11,000원
 
 
저마다 부려 있고 있는 말과 어휘가 다른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노력의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고 간주하기 쉽지만 실은 ‘말의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의 장소’란 개별자의 예술적 감각이나 능력보다 ‘삶의 반경’에 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 ‘삶의 반경’이란 개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아닌 한 개인을 둘러싼 구조와 환경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문장’도 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아울러 문장과 문장을 접속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확하게 문장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말의 장소’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평생을 살아도 알 수 없고, 쓸 수 없는 문장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장의 반경’은 개인의 ‘실착’이나 ‘빈곤’으로만 치부될 수 없다.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이라는 범박한 규정이 여전히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좋음과 나쁨이라는 가치 판단은 ‘문학성’이라는 심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문제는 ‘문학성’이 문학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신화적 체계를 통해 구축되는 대단히 모호한 규정이라는 데 있다. 좋음과 나쁨이라는 가치판단과 이를 바탕으로 규정되는 위계를 ‘문학성’이 아닌 ‘말의 장소’의 차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요청된다. ‘말의 장소’란 ‘삶의 반경’과의 상호 교섭을 통해 마련되는 것이기에 ‘문학성’이라는 신화적인 가치 체계로 작품을 손쉽게 규정하는 것이 아닌 문학과 삶의 접점에 작품을 놓아둘 수 있는 공간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이 공간은 소설 독해의 새로운 장이기도 하다. 증상적인 독법이 바로 그것이다.
우경미 소설의 ‘장소’, 그 ‘주소지’를 파악하는 데 이러한 증상적인 독법이 요청되는 것은 그가 구축하고 있는 많은 소설들이 ‘이방인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란 ‘토지 소유자’가 될 수 없는 이를 가리키지 않는가. 달리 말해 ‘무장소성’을 체현하고 있는 이들이 이방인인 것이다. 이 무장소성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의 부재나 결여뿐만 아니라 ‘상징 형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단적으로 공동체에 안착하는 문자를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문자를 가지지 못하기에 이방인은 표현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방인은 ‘내면’을 가질 수 없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근대 소설에서의 내면이란 그저 모든 구성원들이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민족(nation)과 국가(state) 그리고 자본(capital)의 결합이 개별자들의 ‘내면’을 만들어낸다. ‘상상된 공동체(imaged community)’의 경계선이 바로 내면인 것이다.
앞서 우경미의 소설이 ‘하고 있는 말’보다 ‘하지 못한 말’의 힘이 더 세다고 한 것은 이러한 문맥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결여’로 간주될 수 있는 요소를 ‘어법’이라는 특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경미가 묘사하고 있는 공간과 인물들이 구체성과 디테일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노출하고 있는 것은 ‘이방인의 어법’이 발현되는 ‘장소’ 위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이때 우경미의 몇몇 소설이 고백체나 서간체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단순한 소설적 기법이 아니라 ‘이방인의 어법’이 표출되는 방식에 가깝다. 상대에게 말을 전하는 방식을 소설 전면에 드러내고 있지만 그들의 말은 수신자에게 가닿지 못한다. 그 이유는 수신자의 주소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확하게 발신자가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발신지 불명’의 편지를 보내는 사람, 내면을 가지지 못한 자의 독백. 일견 자폐적이거나 낭만적인 정조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말하기 방식을 서둘러 ‘문학적 한계’라 규정지을 것이 아니라 증상적 독법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이방인에게 주어진 ‘삶의 반경’ 위에서 가능한 발화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우경미의 소설은 우리들로 하여금 ‘결여’를 ‘질문’으로 바꾸는 관점의 전환을 요청한다. ‘주소 없음’과 ‘발신지 불명’을 근간으로 하는 ‘이방인의 어법’은 이방인의 서사가 국경을 종횡무진 횡단하는 ‘탈국경적 문맥’만이 아니라 바로 이 증상적인 어법의 특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정이 이러할 때 우경미 소설의 증상적인 어법을 통해 이방인 작가의 계보를 이어가는 단초를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김대성(문학평론가), <우경미 소설집을 읽고> 중에서
 
 
나비들의 시간
바람의 말
섀도박스
펠리컨은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
생에 일어난 사소한 일들
어부의 집
내려오지 않는 천국
스케이트

작가의 말
우경미 소설집을 읽고(김대성)
 
 
• “나비는 화석이 되기 힘들대요.”
“왜요?”
“날개가 너무 약하고 부드러워서…… 화석이 되기도 전에 사라진대요.”- <나비들의 시간>(33쪽)

• 이 길의 끝에 가닿으면, 나는 또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아직은 현재시제 상에 놓여 있는 남자……. 그에게로 가기 위해 나는 이렇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나 급한 마음과는 달리 차가 간선도로로 얹힌 순간부터 속도계가 뚝 떨어질 정도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발에 힘이 빠진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을지 배경 없는 사진처럼 훤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127~128쪽)

• 사마귀가 제 어미 살을 파먹고 자라듯 살뜰히 남의 손가락에 의지해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몸부림쳤다. (중략)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문대고 누르고 잡아당기기를 거듭하는 동안 어깨의 통증도 차츰 나아갔는데 그에 따라 그의 중요성도 옅어져갔음을 인정해야겠다. 더불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미래가 그 속에 있었다. – <내려오지 않는 천국>(211쪽)

• 당신의 아내는 남편과 아들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이 유감스럽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했다.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말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려오지 않는 천국> (221쪽)

•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 게 아닌 모양이다. 사람은 그대론데 세상이 마구잡이 회오리를 일으켜 혼돈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꿈은 터진 풍선처럼 형태도 없는데 욕망만 마구잡이로 튕겨 나오는 기계가 있다면 세상은 신이나, 별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을 튕겨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자레인지 안에서 팽창해가는 팝콘처럼 말이다. -<생에 일어난 사소한 일들>(157~158쪽)

• 고개를 들어 굳게 닫힌 그녀의 창을 바라본다. 어떤 실루엣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가 그곳에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는 삼층에서, 당신은 지하 귀퉁이 방에서, 한 건물 안에서 같은 수돗물을 마시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소리라도 지르면 들릴 것 같은 한 공간에서. -<어부의 집>(172쪽)
 
 
우경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 작가세계로 등단했고 현재 런던에 거주하면서
문예지 등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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