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걷다: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
저자 이재형 지음
장르 인문사회과학
ISBN 9788931021219
발행일 2020-07-07 (초판)
제본 형태 / 판형 소프트 커버 / 규격외
페이지수 344
정가 16,000원
 
세상의 모든 길은 또 다른 삶의 현장이다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르퓌 순례길
그 길 위에서 만나는 평등·나눔·연대의 메시지

부엔카미노, 본보야지(Buen Camino, Bon Voyage)!
스페인과 맞닿은 또 다른 순례길, 프랑스 르퓌 길

예수 부활 이후 이베리아반도까지 기독교를 전도한 것으로 알려진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810년경에 스페인의 한 은둔자가 ‘캄푸스 스텔라’(현재의 산티아고)에서 발견했다. 그곳으로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순례하러 가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겨났다.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 순례는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기 위한 체험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순례길’ 하면 제일 먼저 스페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스페인의 접경인 프랑스에도 유명한 순례길이 있다. 르퓌 순례길이다. 이 길은 프랑스 남부 산간지방의 르퓌(Le Puy En Velay)에서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로 이어지는 750킬로미터의 여정으로, 이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순례길이 이어진다. 스페인에 비해 프랑스의 순례길은 산맥을 따라 언덕과 계곡이 반복되고, 고요한 숲속으로 길이 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연 풍경이 펼쳐지고 지역마다 살펴볼 문화유산이 많아 전 세계 순례자들을 조용히 불러 모으고 있다.

이재형은 1996년부터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프랑스의 문학, 사상, 사회과학 도서 90여 권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한 전문 번역가다. 그는 2010년에 불현듯 “떠나라고 등을 떠미는 알 수 없는 힘”으로 니콜라 부비에의 책 한 권과 함께 길을 나섰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그 길에서 정신적인 변화를 느낀다. 그것을 종교적인 체험으로 받아들인 그는, 종교인으로서 한 번, 그 후에는 여러 이유로 르퓌 순례길을 걸었다. 이재형은 프랑스 전문 번역가답게 프랑스 역사, 정치, 문화 전반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구석구석을 소개하고자 했고, 또한 그가 느낀 프랑스의 아름다운 정취를 사진으로 포착하려고 했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와 이미지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르퓌에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역사·문화·자연이 어우러진 색다른 순례 여행

‘프랑스’ 하면 바게트, 포도주, 프랑스혁명 등으로 상징되는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이 먼저 떠오르지만, 르퓌 순례길에서 우리가 곱씹게 되는 풍경들은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종교전쟁, 가난, 고립, 박해의 역사가 이 순례길 위에 새겨져 있다. 고요한 숲길이 안내하는 르퓌 순례길을 걷다 보면 《보물섬》을 쓴 루이스 스티븐슨이 당나귀와 함께 걸었던 고독한 순례길, 세벤 지역의 종교적 박해, 보호받지 못한 순례자를 돌보는 오브락 자선병원, 토켈 정신병원이 지키고자 애쓴 자유의 가치, 제보당에 괴물상으로 남아 있는 집단 공포, 훌륭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는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최후의 심판> 팀파눔과 이 부조가 전하는 종교적 교훈, 또 오방 광산에서 떠올리는 한국의 사북항쟁, 프랑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알제리 전쟁의 흔적 등이 역사의 단편들을 불러온다.

하지만 역시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라는 점도 이 순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다. 이재형은 르퓌 길 위에서 얀 페르메이르, 오귀스트 로댕, 장 바티스트 피갈, 에두아르 마네, 폴 엘뤼아르, 에밀 졸라,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시스 잠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러 예술가의 자취를 발견하고, 그들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프랑스의 일상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또, 순례자의 마음을 채우는 렌틸콩 수프, 추위를 달래주는 오베르뉴 대표 음식 알리고, 척박한 환경에서 밀가루를 대신해 주식이 되어준 밤가루 요리, 한국의 찌개를 연상시키는 카술레와 푸짐한 인심을 담은 쿠스쿠스, 프랑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치즈 등 고된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주는 소박한 프랑스 음식을 소개한다.

평등, 연대, 나눔, 공존, 소통, 배려, 소박함
순례길에서 배우는 뉴노멀 시대 공생의 진리

국적과 출신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차별과 배제가 없는 순례자들,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험하는 소바주 영지, 자동차가 없는 길, 이름 모를 순례자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먹거리 등. 르퓌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평등, 연대, 나눔, 공존, 소통, 배려의 순간을 통해 소유와 집착의 삶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 마음을 여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 꼭 멀리 이국땅을 밟지 않아도 좋다. 저자의 무한한 호기심이 프랑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한 것처럼, 우리도 어느 길 위에서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이재형의 르퓌 순례길 여행은 그러한 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인문학적 여정이다.
 
 
프롤로그

▸여행으로의 초대
▸르퓌, 순례의 시작
▸또 하나의 길, 스티븐슨의 당나귀 길
▸르퓌에서 생프리바달리에까지
▸생프리바달리에에서 소그까지
▸소그에서 소바주까지
▸소바주에서 오몽오브락까지
▸오몽오브락에서 나즈비나스까지
▸나즈비나스에서 오브락까지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까지
▸생첼리도브락에서 생콤돌트까지
▸생콤돌트에서 에스탱까지
▸에스탱에서 골리냑까지
▸골리냑에서 콩크까지
▸콩크에서 리비냐크르오까지
▸리비냐크르오에서 피자크까지
▸피자크에서 카오르까지
▸카오르에서 몽퀴크까지
▸몽퀴크에서 무아사크까지
▸무아사크에서 오빌라르까지
▸오빌라르에서 렉투르까지
▸렉투르에서 콩동까지
▸콩동에서 에오즈까지
▸에오즈에서 에르쉬르라두르까지
▸에르쉬르라두르에서 아르테즈드베아른까지
▸아르테즈드베아른에서 나바랑스까지
▸나바랑스에서 생장피에뒤포르까지
▸다시 파리로

에필로그
 
 
▸보통 프랑스에 있는 이 르퓌 순례길과 스페인에 있는 프랑스 순례길을 합쳐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부른다. 물론 프랑스에는 르퓌 길 말고 다른 순례길들이 있고, 스페인에도 프랑스 길 말고 다른 순례길들이 있다. 어느 길을 걷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일단 길을 나서는 일이다.
<프롤로그> p. 9

▸오베르뉴 지방은 4월에도 눈이 올 정도로 날이 추우므로 걷다 보면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양파수프로 속을 든든히 채우면 좋다. 양파수프는 대부분 스타터로 먹지만, 위가 작은 사람에게는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지역에 따라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양파와 버터, 식용유, 빵 조각, 치즈, 소금, 후추는 기본으로 들어간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양파수프 값이 10유로가 넘는 경우도 있지만, 추운 날 르퓌 길 순례를 할 때 어느 이름 없는 시골 식당에서 1유로에 먹어본 적도 있다. 후다닥 먹어치우고 식당 주인을 무심결에 쳐다봤더니 한 그릇 더 가져다준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도 아직 시골 인심은 넘쳐난다.
<오몽오브락에서 나즈비나스까지> pp. 109-110

▸오브락을 떠나 생첼리도브락 Saint-Chely-d’Aubrac으로 향하다 보면 드넓은 밤나무 숲이 나타난다. 특히 고산지대의 토양은 밀을 재배하는 데 적당하지 않지만, 밤나무는 메마른 규토질의 산성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높이가 최대 30미터에 달하기도 하고 수령이 500년에 이르기도 한다. 5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품종을 가진 밤나무는 빵나무 arbre à pain라고 불릴 만큼 프랑스의 경제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몇백 년 동안 밤은 기본 식량으로 쓰이거나 올리브유나 치즈, 포도주와 맞바꿔졌다. 흉년이 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상황이 힘들어졌지만, 그때에도 최소한 밤은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까지> pp. 123-124

▸골리냑 마을 초입에서는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이 새겨진 아름다운 돌 십자가가 순례자를 맞는다. 이 십자가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이 마을을 지나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우리는 지난 1200년 동안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순례자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그들은 돈도 거의 없이 옷 몇 벌만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멀고 먼 그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성당을 향해 몇 달 동안 걸어갔다. 그런 다음 자신이 갈 때 남긴 흔적을 다시 하나하나 발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들의 눈은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로 가득했다.
<에스탱에서 골리냑까지> p. 147

▸순례는 하강과 상승의 반복이다. 해가 뜨면 태아가 어머니 배 밖으로 나아가듯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고 해질 무렵이 되면 고단한 몸을 눕히기 위해 저 아래 마을로 내려가 다시 안온하고 평화로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를 되풀이한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 La Poétique de l'espace》(1957)에서 우리가 어머니 태반 속에 있을 때 무의식 속에 형성된 원형적 이미지를 ‘요나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즉 우리는 어떤 공간 속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태 회귀본능이다.
<골리냑에서 콩크까지> p. 160

▸아르마냐크 브랜디는 숙성되면서 맛이 더 복잡해지고 풍성해지고 섬세해지는데, 그 품질은 가스코뉴산 참나무로 만든 400리터짜리 통에 좌우된다. 리무쟁 Limousin 지방에서 베어낸 참나무로 만든 통은 부드럽고 우아하며, 살짝 달콤한 바닐라 향을 내는 반면 가스코뉴 지방에서 베어낸 참나무로 만든 통은 더 시고 떫은 맛과 태운 듯한 강한 향을 낸다. 최장 18개월 뒤에 무색의 증류물을 더 오래된 참나무통에 옮겨 붓는데, 타닌이 너무 많이 생기고 색깔이 지나치게 진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술 창고의 습도나 기온은 아르마냐크 브랜디의 숙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콩동에서 에오즈까지> p. 289

▸아르테즈드베아른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오른편으로 ‘카고들의 샘 La Fontaines des Cagots’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샘은 이 표지판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옛날에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카고’라고 불렸던 사람들, 즉 나환자들은 루제스 성당의 작은 문을 통해서만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나병이 전염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마을의 성벽 밖에서만 살아야 했고, 같은 이유로 그들의 샘에서만 물을 길어야 했다. 이 ‘카고들의 샘’은 아직 남아 있는 그들의 샘 중 하나다. 나병은 사라졌지만, 이 집단은 오랫동안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다.
<아르테즈드베아른에서 나바랑스까지> pp. 307-308

▸순례자들은 연대, 나눔, 공존, 소통, 배려 등의 가치들을 배우거나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고래가 배 속에 가두었다가 뱉어낸 요나처럼,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 푸른색 옷을 입고 미래를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아델처럼 말이다. 순례자는 또 다른 나, 새로운 나가 되어 더 넓은 곳, 더 높은 세계로 걸어나갈 것이다
<에필로그> p. 342
 
 
이재형
전문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대학교에서 강의했다. 1996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꾸뻬 씨의 여행’ 시리즈, 《인간 불평등 기원론》 《군중심리》 《법의 정신》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걷는다 끝.》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세상의 용도》 《부엔 까미노》 《가벼움의 시대》 등 고전을 비롯한 다수의 프랑스 인문학, 사회과학 도서를 한국어로 옮겼다. 꼬박 한 달이 소요되는 고된 순례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의 프랑스 길인 르퓌 순례길을 2010년에 처음으로 걸었다. 그 길 위에서 강렬한 종교적 체험을 한 뒤, 여러 차례 르퓌 순례길에 올랐다. 그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이번에는 다른 이의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프랑스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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